아름다운재단 ‘청소년 자발적 사회문화활동 지원사업’(이하 청자발)은 청소년이 공익활동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 조성을 꿈꾸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해 청소년이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2017년 청자발은 10개 청소년 모둠을 지원대상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올해는 누가, 어떤 자발적 활동이나 창의적 실험을 할까요? 설렘 가득한 마음을 안고 만나볼까요? 지난 9월 넷째주 수요일, 부산 온새미학교에서 <늘품>을 만났습니다. |
좌충우돌 샐러드 장사꾼
오늘 주문은 샐러드 20개. 시간에 맞추어 샐러드를 배달하기 위해 앞치마와 머릿수건을 차려입고 마스크까지 착용한 <늘품> 멤버들이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책상을 이어붙인 작업대 앞에 나란히 서서 나란히 서서 플라스틱 용기에 양상추, 치커리, 어린잎, 파프리카, 방울토마토, 특제소스를 순서대로 담는다. 작업장 공기는 의외로 차분하다. 무뚝뚝한 부산 사나이들이라 말이 없는 걸까, 서로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추어 왔기 때문에 말이 필요 없는 걸까.
<늘품>은 질 좋은 샐러드를 저렴하게 공급하는 걸 목표한다. 학교의 인근에 있는 500여 평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유기농 채소를 듬뿍 담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개발한 특제소스를 곁들인 샐러드팩을 3천원에 판매한다. <늘품>의 샐러드는 학교 친구들과 학부모님들께 인기가 좋다.
올해 봄까지 텃밭의 작물 소출량은 꽤 괜찮았다. 그런데 여름부터 가뭄이 계속되었고, 9월 중순에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서 농사를 망쳤다. 태경은 오랫동안 정성을 들여 가꾼 텃밭이 한순간에 망가지는 걸 보고, 역시 인간은 자연을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텃밭을 복구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마트에서 산 채소로 샐러드를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학교 친구들이나 부모님들의 주문만 받았지만, 추석 연휴가 끝나면 길거리로 나가 본격적으로 장사를 해볼 생각이다. 자전거와 리어카를 개조하여 푸드바이크를 만들었다. 꼬박 사흘이 걸렸다. 목공작업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선생님의 도움으로 멋진 푸드바이크를 완성했지만, 구청에서 푸드트럭 영업허가를 받아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다.
내 생애 첫 의기투합
<늘품>은 부산 온새미학교의 고등과정 3학년 남학생 여섯 명으로 구성된 모둠이다. 이들은 중고등과정 내내 교내 활동 참여에 소극적이었다.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거나 역할을 담당하기보다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시키는 일만 했다. 그런데 막상 졸업을 앞두니까 우리끼리 뭔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어떤 일을 하면 항상 여자애들이 오더를 내려주었는데, 이제 오더를 내려줄 애들도 없고… 그동안 우리끼리 해본 게 딱히 없는 것 같아요. 학교 졸업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자애들끼리 뭔가 해보고 싶었어요.” – 종환
이들은 왜 하고많은 것 중에 샐러드 장사를 선택했을까. 한 번도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본 경험이 없어 선생님께 도움을 구했다. 방송프로그램에서 본 청년창업 사례에 꽂혀(?) 있던 선생님은 샐러드 장사를 제안했다. 일 경험을 통해 구성원간 소통과 협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우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늘품> 멤버들은 장사라고는 바자회에 참여해본 게 전부였지만,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애 첫 의기투합이 성사되었다.
스킬이 추가되었습니다
일 경험이 없는 <늘품> 멤버들에게 샐러드 장사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먼저 샐러드 만들기. 청결한 위생상태를 유지하고, 적당량의 재료를 준비하고, 칼질하고, 뒷정리하는 것 하나하나 배웠다. 한번은 샐러드에서 벌레가 나와서 학부모님의 항의도 받았다. 이제 식초를 희석한 물에 채소를 담갔다가 여러 번 헹구어 낸다.
그렇게 좌충우돌하며 반년을 보냈다. 멤버들은 점점 일이 손에 익었고, 누가 말하지 않아도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또한 소비자의 피드백을 그때그때 반영하여 샐러드 품질을 개선하고 있다. 물론 <늘품> 멤버들이 샐러드만 잘 만들게 된 건 아니다. 팀을 운영하고, 지원금을 관리하는 등 사회에서 필요한 작은 기술들을 연습했다.
“이제는 누가 안 시켜도 각자 알아서 채소를 씻고, 소스를 만들고, 설거지도 하고… 솔직히 우리는 누가 안 시키면 절대 안 하는 애들이거든요. 지금은 각자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스스로 하고 있어요.” – 성빈
“프로젝트를 하면서 요리에 관심이 생겼어요. 또한 역할배분이나 지원금 관리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뭔가 배웠다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자잘하게 새로운 걸 해볼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 종환
“푸드바이크 만드는 게 힘들었어요.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볼 때 머릿속에 잘 그려졌는데, 실제 해보면 생각대로 되지 않았어요. 푸드바이크에 쓸 수 있는 목재가 있고, 그렇지 않은 목재가 따로 있는 거예요. 이런 차이를 전혀 몰랐던 거예요. 중간에 많이 지쳤지만, 끝까지 해보려고 서로서로 노력 중이에요.” – 태경
<늘품> 멤버들은 대안학교 고등과정 졸업을 앞두고 있다. 몇 달 후에는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몽골에 별을 보러 가고 싶은 종환, 대학에 진학하고 싶은 균화, 고졸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웹툰 작가가 되고 싶은 성빈, 취업해서 돈 벌고 싶은 태경과 수철, 내년 지방선거에서 생애 첫 투표를 꼭 하고 싶은 성훈. 청자발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이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나에게 청자발은 ○○이다
“나에게 청자발은 신세계이다. 이런 지원을 처음 받았어요. 우리의 활동을 응원해주는 많은 분을 알게 되어서 좋았어요.” – 태경
글|아름다운재단 허그림 간사, 사진 | 이윤미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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