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 이후 시민들의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일상의 민주주의’ 담론이 확대되었습니다. 시민들은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정치와 연결 지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민들은 더 이상 일종의 전문가집단인 시민단체를 경유하지 않고, 직접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한국 시민사회와 아름다운재단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아름다운재단은 시민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변화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역할과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협력사업팀은 그 힌트를 얻기 위해 지난 7월 영국 런던으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영국의 비영리기관들을 방문하여 시민교육, 시민참여의 전략과 사례, 재단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이 시민들의 참여와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영국 8개 기관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강력한 민주주의를 원한다

인볼브(Involve)는 2003년 설립 이래 ‘사람들이 의사결정의 핵심에 있어야 한다’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모든 시민을 위해 작동하는 강력한 민주주의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힘을 부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정책결정과정에 시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숙의민주주의 프로세스(토론과정을 거쳐 합의에 도달하는 민주적 절차)를 이행한다.

인볼브는 시민의회, 라운드테이블, 워크숍 등의 형태로 시민들의 의견을 모으고, 이를 정책결정자에게 전달한다. 또는 정부 회의에 참여하여 시민들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한다. 과학기술(에너지, 물, 우편 등), 사회복지, 인공지능, 유전공학, 브렉시트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룬다. 정부, 의회, 지자체, 시민사회단체의 용역을 받아 프로젝트를 진행한다(시민들이 직접 의제를 정하고 정부나 의회가 기피하는 의제를 다루기 위해 향후 독립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도 있다).

이들이 지향하는 목표는 명확하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참여는 반드시 임팩트를 가져야 한다. 형식주의나 효과 없는 참여를 거부하기 위해 프로젝트 착수를 신중히 검토한다. 정책결정과정에 시민들의 개입할 여지가 있는지, 정책결정자가 시민들의 의견을 수용할 의지가 있는지 반드시 확인한다.

우리가 정부나 의회로부터 프로젝트를 받을 때 강조하는 점은 정치인들이 뒤로 숨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의견에 대해 피드백하고, 이를 반드시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다. 그리고 이미 결정된 사안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시민들의 의견이 정책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에만 착수한다. – 리즈 (인볼브 매니저)

다양한 숙의민주주의 모델을 실험하는 인볼브와 회의하는 모습

다양한 숙의민주주의 모델을 실험하는 인볼브

시민의회에 주목하는 이유

전 세계적으로 기존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숙의민주주의란 ‘의사결정의 핵심적 과정으로 폭넓고 개방된 공적 논의(deliberation)를 취하는 민주주의의 형식(1980년 미국 정치학자 조셉 베세트)’으로서 구성원들의 신중한 공론화 과정을 전제한다. 시민의회는 숙의민주주의 모델 중 하나로서 추첨제로 뽑힌 시민대표들이 의회를 구성하여 자유롭고 평등한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한다.

영국은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한 이후 정치권과 사회적 분열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2017년 북아일랜드 연합정부 구성 실패(민주연합당, 신페인당의 합의 지연으로 10개월 만에 조기 선거)를 계기로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시민들의 참여가 단순히 투표나 여론 조사로 제한되는 것에 대한 비판과 시민들이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대화와 토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편 정책결정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다룰 경우에 ‘시민들의 의견에 따른 것이다’라는 명분이나 정당성을 얻기 위해 공론장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런 배경에서 영국의 시민사회는 아일랜드, 오스트리아, 캐나다 등에서 성공을 거둔 시민의회 모델에 주목하게 되었다.

시민의회의 진행방식

인볼브는 정부나 의회의 용역을 받아 과학기술, 사회복지 등 다양한 주제로 시민의회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시민의회는 참가자들이 주제와 관련된 올바른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토대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정보 제공, 대화와 토론 시간으로 구성한다. 시민의회의 목표가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라면 정보 제공, 시민들이 하나의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라면 대화와 토론에 보다 많은 시간을 할당한다.

시민의회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영국 시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공식적인 기구가 아니다. 인볼브는 시민의회가 대표성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인구 통계의 특성을 고려하여 참가자들을 선발하고, 다양한 관점을 가진 전문가들과 협력하여 논의프레임을 정한다. 인볼브는 참가자들이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테이블마다 퍼실리테이터를 배치하여 자유롭고 평등한 대화를 돕는다. 전문가는 참가자들의 수준에 맞는 언어를 사용하여 정보를 전달하고, 궁금한 점이 생기면 언제든지 대답할 수 있도록 대기한다.

프로젝트 전체는 논의프레임 세팅, 시민대표 선발, 시민의회 진행, 보고서 작성 순으로 진행되고, 3개월 이상 소요된다.

  1. 논의프레임 세팅: 정부나 의회가 큰 주제를 정한다(예: 지속가능한 성인복지 펀딩솔루션). 인볼브는 정책결정자들이 알고 싶은 것을 구체적인 질문으로 만든다. 정책결정과정에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없는 질문은 제거한다. 다양한 관점을 가진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논의프레임을 확정한다.
  1. 시민대표 선발: 참가자 선발은 추첨재단(Sortition Foundation)과의 협력한다. 나이, 성별, 학력 등 인구 통계의 특성을 고려하여 추첨한다. 선발된 그룹이 대표성을 가지고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지 검토한다.
  1. 시민의회 진행: 가장 작은 규모로 진행하는 경우에는 시민대표 50명 선발하고, 2박3일 동안 진행한다. 참가자들은 행사장에 금요일 저녁까지 도착,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한다. 주말 이틀 간 본회의에 참석한다(10시간). 참가자 50명인 경우에는 1,2명이 전체 진행한다. 7개 테이블에 나누어 참가자 7명 내외, 퍼실리테이터 1명이 착석한다. 퍼실리테이터는 일부에게 발언권이 편중되거나 대화의 내용이 주제를 벗어나지 않도록 한다.
  1. 보고서 작성: 인볼브는 시민의회에서 나온 대화 내용을 분석하여 보고서를 작성한다. 정책결정자들이 알고 싶은 내용이 포함되었는지 확인한다. 정부나 의회에 보고서를 제출하고, 정책결정과정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피드백을 요청한다.
  1. 기타: 참가자들이 시민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 일체를 제공한다(교통비뿐만 아니라 베이비시터 인건비까지). 시민의회가 끝나면 참가자들에게 150-200파운드(약 22-30만원) 상당의 선물을 준다. 참가자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 아름다운재단은 인볼브의 주요 사업 중에서 ‘시민의회’를 중심으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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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출장이야기 시리즈> 보기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변화 – Citizens UK
사회혁신이 필요한 이유 – SIX
모두가 참여하는 생태계 만들기 – Participatory City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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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름다운재단 허그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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