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청소년공익활동지원사업 ‘유스펀치’>는 청소년의 시민성을 증진하고, 더 나아가 공익활동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청소년들의 공익활동을 지원합니다. 2019년 유스펀치는 11개 청소년 모둠을 지원대상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이중에서 보드게임을 이용한 노동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사회행동동아리 내일>을 만났습니다. 10월의 마지막주, 부산에서 만난 <사회행동동아리 내일>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노동교육은 처음이지?
“오늘 우리는 <LV.UP>이라는 게임에 접속할 거예요. 먼저 로그인을 해볼까요? 나눠드린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 로그인 됩니다.”
부산 덕포동에 위치한 디딤돌지역아동센터의 거실에 스무명의 초등학생들이 모였다. <사회행동동아리 내일>(이하 내일) 멤버들은 아이들에게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게임을 하기 위해 로그인이 필요한 것처럼 일을 하기 위해 회사와 계약이 필요하다고 한다. 근로계약서는 임금, 근로시간 등 핵심 근로조건을 명확시 정하고 있어 사업주와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LV.UP>에 접속하기 위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노동자가 되었다.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었다. <라보라보>는 유명 보드게임 할리갈리를 변형한 것으로, 참가자들이 순서대로 변호사, 급식조리사, 건설노동자 등 직업카드를 뒤집고, 같은 카드가 나오면 “노동조합!”이라고 외치는 게임이다. 아이들은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든지 노동자라는 것을 알고, 노동자 2인 이상이 모여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내일>은 동아대학교 재학생 5명으로 구성된 모둠이다. 이들은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의 죽음 보도를 접하고, 많은 청소년들이 일하다가 폭언, 초과근무, 임금체불 등 인권, 노동침해를 당하지만, 이를 인지하거나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노동교육 시간도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일>은 아동, 청소년 연령별 맞춤형 노동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보드게임을 이용한 노동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 부산의 지역아동센터에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다음은 <내일>의 멤버 성빈, 나영, 차형과의 일문일답.
우리 모두 노동자가 된다
아이들이 보드게임을 정말 좋아하더라구요.
차형: 노동이라고 하면 자칫 무거운 주제일 수 있는데,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나온 아이디어에요. 그리고 또, 아무래도 저희가 전문 교육자가 아니라서 부족한 점이 많은데 게임이라면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성빈: 깊이는 조금 부족해도 실용적인 지식을 많이 알려주기 위해 노력했어요. 예를 들면 알바 하다가 접시를 깨뜨렸는데 사장님이 월급에서 깐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게임에 우리 주변에 어떤 노동자가 있는지, 어떤 권리를 가지는지, 권리가 침해당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내용을 담았어요.
<LV.UP>은 어떤 프로젝트예요?
성빈: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교육 프로그램이에요. 말씀드린 대로 보드게임을 통해 노동이나 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 등을 배우는 거예요. 요즘은 청소년들도 알바를 많이 하는데, 근로계약서는 무엇인지, 최저임금은 어떻게 결정되는지,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학교에서 배우지 않으니까요. 지역아동센터 등에서 교육을 진행하고(백양종합사회복지관, 덕포영재지역아동센터, 디딤돌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의 피드백을 받아 조금씩 수정하고 있어요.
게임은 <내일>의 멤버들이 직접 만들었어요?
나영: 라보라보는 작년에 만들었고, 올해는 빌드업이랑 최저임금위원회를 만들었어요. 빌드업은 브루마블을 변형한 건데요. 참가자들이 각자 건설현장 관리자가 되어 산재사고를 줄여야 이기는 게임이에요. 건설현장에서 산재사고로 죽거나 다치는 노동자가 많아요.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 안전관리가 허술하니까. 아이들에게 게임을 통해 안전한 노동환경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하고 싶었어요.
차형: 최저임금위원회는 말 그대로 최저임금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배울 수 있는 보드게임이에요. 뉴스를 보면 최저임금위원회가 열렸다, 내년 최저임금은 얼마로 정해졌다고 하는데, 자세한 내용을 모른단 말이에요. 우리의 삶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건데도 말이죠. 이 게임은 청소년들과 함께 만들었어요.
청소년들과 함께 만들었다구요?
성빈: 올해 활동 중에 가장 의미 있는 일이 청소년들과 함께 보드게임을 만든 것이라고 생각해요. 백양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님을 알게 되었는데, <LV.UP> 프로젝트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너무 좋다고, 같이 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선생님이 소개해주신 중고등학생 7명과 같이 처음 한 달은 노동관련 스터디를 하고, 그러고나서 보드게임을 만들었어요. 저희끼리 하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려도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청소년들이 저희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아니까요. 아이들이 어려워할 것 같은 부분에 대해 피드백을 해줘요. 최저임금위원회는 고3 친구가 주도적으로 아이디어를 낸 거고.
근본적인 질문인데요, 왜 아이들에게 노동교육이 필요할까요?
성빈: 우리 사회에서 극소수의 사람들만 빼고 거의 모든 사람이 노동자예요. 또는 노동자가 될 거예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노동자라는 인식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만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시위나 파업을 보고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저도 공부하기 전에는 몰랐어요. 실은 저희 부모님도 비정규직 노동자, 저도 휴학하고 일하고 있으니 노동자인데. 어릴 때부터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공감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극단적으로 사회 분열이 될 수 있겠다 싶어요. 그래서 노동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행동이 변화를 만든다
<내일>은 어떻게 만들어진 팀이에요?
성빈: 재작년 선배들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야 여행가자> 지원을 받아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전국을 여행했어요. 이대로 끝내기는 좀 아쉬워서 멤버들끼리 독서토론을 했어요. 주로 여성과 노동관련 책을 읽었죠. 그러다가 더 많은 사람을 모아보자, 작년에 정식동아리 등록을 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공부하고, <LV.UP> 프로젝트 같은 활동도 하고 있어요.
스터디를 하다가 <LV.UP>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학습에서 실천으로 나아가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차형: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만으로 변화가 생기지 않아요. 집회도 가고, 캠페인도 하고 직접 행동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 행동하기 위해 공부가 필요하지만,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성빈: 행동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말에 공감해요. 저는 교육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가진 지식을 미래세대와 나누고, 이들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어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활동하면서 어떤 점이 힘들었어요?
성빈: 태풍이요. 올해 가을에는 주말마다 태풍이 왔어요. 지역아동센터에서 교육을 진행하기로 약속했다가 몇 번이나 취소했어요. 아이들의 안전 문제 때문에 일정대로 하기도 어려우니까.
차형: 보드게임을 100%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었어요. PPT로 디자인하고, 출력해서 자르고, 코팅하고. 이 시간을 다른 데 썼다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지역아동센터에서 교육 진행할 때도 힘들었어요. 아이들이 장난이 워낙 심하니까. 이 부분은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요.
태풍이라니, 생각지 못한 어려움이 있었군요. 반대로 좋았던 점이 있다면?
성빈: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즐거워하면 저희도 좋아요. 수업 끝나고 아이들에게 새롭게 알게 된 것 있어요? 물어보면 새로운 직업을 알게 되었어요, 근로계약서랑 최저임금도 알 것 같아요. 그러면 보람 있고, 초등학생들이 많으니까 보드게임으로 수업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리고 보드게임을 같이 만든 청소년들이 <LV.UP> 프로젝트에 애정을 갖고 이런 거 추가하면 좋겠다고 의견을 주면 너무 좋아요.
활동을 통해 여러분에게 생긴 변화가 있나요?
나영: 저는 좀 수동적인 인간이에요. 그런데 프로그램 진행할 때 책임감을 가지고 분위기를 이끌어 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그날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니까.
차형: 처음 백양종합사회복지관에서 중고생들을 만났을 때, 우리가 케어해줘야겠다, 이끌어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편협한 생각이었어요. 최저임금위원회를 만들 때에도 먼저 아이디어를 내주고, 교육을 진행할 때도 각자 자기 역할하고. 저희와 청소년들이 동등한 관계, 상호적인 관계라는 걸 깨달았어요. 저희가 청소년들을 아래로 본 게 실수였어요. 오히려 저희보다 뛰어난 점도 있고, 저희가 놓친 걸 잡아주기도 하고. 반성을 많이 했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자라면서 언제 어떻게 배우는 걸까. 부당한 상황에서는 참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위험하면, 불안하면, 힘들면 작업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회사는 그만두어도 된다는 것을. 세상에 원래 그런 건 없다는 것을.” – 은유,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한국에서는 매년 2,400여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다. 한국의 산재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이다. 여기에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청소년부터 20대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노동자들의 죽음을 멈추기 위해서는 학교에서의 노동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노동자의 안전은 그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때까지 <내일>의 활동이 청소년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 | 아름다운재단 허그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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