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청소년공익활동지원사업 ‘유스펀치’>는 청소년의 시민성을 증진하고, 더 나아가 공익활동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청소년들의 공익활동을 지원합니다. 2019년 유스펀치는 11개 청소년 모둠을 지원대상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이중에서 경남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조례만드는청소년>를 만났습니다. 10월의 마지막주, 부산에서 만난 <조례만드는청소년>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경남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경남학생인권조례 제정이 무산되었다. 지난 5월 경남도의회 교육위원회는 조례안을 심의해 찬성 3명, 반대 6명으로 부결시켰다. 상임위에서 부결된 안건이라도 도의회 의장이 직권상정하거나 도의원 20명 이상이 동의하면 본회의에 안건을 상정해 표결할 수 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아 결국 자동 폐기되었다.
경남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9년, 2012년에 이어 세 번째다. 2018년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공약으로 내건 박종훈 교육감(경남도교육청)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재추진되었지만 무산되었다.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로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기대한 지역 청소년들과 시민들의 아쉬움이 크다.
<조례만드는청소년>(이하 조청)은 경남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을 하기 위해 2018년 9월 설립된 청소년 단체이다. 거리집회, 문화제, 캠페인, 서명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며 학생인권조례의 직접적인 당사자로서 청소년들을 조직하고, 조례안에 이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특히 교육청이 조례 제정 반대 측 의견을 받아들여 34개 항목을 대폭 수정했을 때, 도의회 상임위가 조례안을 부결시켰을 때 학생인권조례가 후퇴하거나 폐기되는 것을 막아내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웠다.
지난 10월 마지막주, 부산에서 <조청>의 멤버 귀홍과 이글을 만났다. 다음은 귀홍, 이글과의 일문일답.
리부트를 준비하는 시간
결국 경남학생인권조례 제정이 무산되었어요. <조청>은 누구보다 실망이 클 것 같아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이글: 5월 15일 상임위 부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아무 생각도 안 들었어요. 그냥 벙쪘어요. 그 후로 엄청 바쁘게 지냈어요. 서울, 진주, 창원을 오가며 거의 매일 기자회견이랑 집회를 했거든요. 7월 19일 직권상정이 자동폐기 되고 한동안 무기력했던 것 같아요. 정신 차리고 8월에 활동평가를 빡세게 했고, 그걸 토대로 활동기록집을 만들고 있어요. (경남도의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유스펀치 신청할 때만 해도 조례 제정은 무조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참담한 결과를 맞이할 줄 몰랐어요. 배우는 건 더 많은 것 같지만.
<조청>은 지난 1년 간 열심히 달려온 것 같아요. 어떤 활동을 했어요?
귀홍: 경남지역 청소년들이 모여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매주 열었어요. 지난 1월에는 수정안 때문에 엄청 싸웠고. 조례 제정에 대한 찬반 논란이 과열되자 교육감이 조례안을 수정하려고 했어요. 조례를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차별금지조항(학생은 성 정체성, 성적 지향, 임신·출산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다는 내용)을 문제 삼거든요. 우리는 차별금지조항이 훼손되면 조례 자체의 의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하고, 그걸 지키려는 활동을 했어요.
이글: 의외로 차별금지조항을 날리지 않았어요. 그건 그대로 두고. 교총이나 교장들의 압박이 컸던 것 같아요. 반성문·서약서를 금지하는 등 교사들이 반대하던 조항들이 날라 갔어요. 우리가 열심히 안 했다면 차별금지조항도 수정했을지도 몰라요.
<조청>의 활동이 성과가 있었네요. 활동평가를 빡세게 했다고 들었는데,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귀홍: 조례 운동, 우리의 활동과 조직문화 등을 전반적으로 평가했어요. 시간이 무척이나 오래 걸렸어요. 평가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는 진 게 아니라 아직 못 이긴거야.” 다른 활동가가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해준 말인데 너무 와 닿아서 활동기록집 제목으로 정하기도 했어요. 일부 활동가들은 조례가 폐기되고 무기력에 빠졌다가 평가를 통해 활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힘을 되찾았어요.
이글: 저도 평가하면서 회복되었어요.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이 부족했는지 명확하게 알게 되었고, 이 운동을 실패라고만 생각하게 않게 되었어요. 그러자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평가의 주요 내용은 조례 운동이 어려웠다는 것. 진행 과정에서 계속 타협해야 하니까. 특히 시민단체들과 연대체를 꾸려 같이 활동했는데, 학생인권의 요구 수준이나 수정안에 대한 입장 등 대부분의 단체들과 우리의 관점이 너무 달라서 힘들었어요. 단체들과 회의할 때 의견도 안 맞고 충돌도 있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후퇴하고 어떻게 합의할 것인가, 당사자로서 타협해야 하는 운동을 하는 것 등이 너무 힘들었어요.
활동의 기쁨과 슬픔
<조청>은 어떻게 만들어진 단체예요?
이글: 2017년 11월 3일 학생의날 경남지역 청소년들이 뭔가 해보자고 모였어요. 청소년인권문화제를 했고, 이를 계기로 임시단체를 만들어 계속 활동했어요. 2018년 6월 지방선거에 청소년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매월 집회를 했어요. 선거가 끝나고 우리가 할 일은 다했다고 판단하고 해산했어요. 이들이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 들어갔다가 2018년 9월 다시 모여 <조례만드는청소년>을 시작했어요.
귀홍은 어떻게 <조청>에 합류했어요?
귀홍: 저는 작년 여름 창원에서 열린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집회에 갔다가 우연히 아수나로를 알게 되었어요. 아수나로 창원지부에서 활동하다가 <조청>으로 넘어와 조례 운동에 합류했어요. 청소년 운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친한 사람이 없어 어색했는데, 하다 보니 제가 엄청 열심히 하고 있더라구요. 집회에서 사회를 본다거나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경험도 하게 되었고요. 더 활동을 열심히 하고 싶은데, 학기 중에는 힘들더라구요. 둘 다 열심히 하려다가 둘 다 제대로 못한 것 같아서. 집회에 직접 못 갈 때에는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했어요. 보도자료를 만들어 보내고. 내가 가지도 못하는 집회 보도자료를 쓰고 있다니, 스트레스를 받기도 해요.
왜 그렇게 열심히 해요? 귀홍을 활동하게 만드는 힘은 뭐예요?
귀홍: 그러게요. 왜 열심히 했지? 처음에는 단순했던 것 같아요.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이 너무 좋고, 이 활동이 가치 있게 느껴지고,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 같았거든요. 중반 지나고부터 의무감이 조금 생겼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부은 활동이니까 운동이 끝날 때까지 남아 있고 싶어요.
이글의 이야기도 궁금해요. 어떻게 청소년 운동을 시작했어요?
이글: 2017년부터 청소년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학교의 억압적인 규제 때문에 빡치는 일이 많았는데, 이걸 어떻게 언어로 풀어낼 수 있을까 궁금했어요. 무작정 네이버를 검색하다가 아수나로를 알게 되었어요(하하). 아수나로가 올려놓은 청소년 인권 자료를 보고 제 언어가 생긴 기분이 들었어요. 흔히들 빨간약을 먹었다고 하잖아요.
활동하면서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어요?
이글: 상임위 부결되고 나서 가장 힘들었어요. 부결 이후 거의 창원 농성장에서 살았거든요. 집회에 오는 사람수도 점점 줄어들고, 조례 운동이 다시 살아날 것 같지도 않고. 이걸 심정적으로 받아들이니까 번아웃이 오더라구요. 창원에 가기 싫고, 회의도 한두 번 안 가고. 이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그래도 돌아보면 좋았던 적도 꽤 많아요. 우리가 학생인권조례를 요구하는 집회를 매주 했는데, 6차 촛불집회가 재밌고 좋았어요. 참가자들도 많았고, 발언진들도 사람들의 사기를 돋우게 발언을 잘 했고, 퍼포먼스도 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이글에게 <조청>의 활동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글: 예전에는 누가 물어보면 나는 활동이 좋고, 청소년 운동이 좋아서라고 대답했는데 지금은 글쎄요. 어느 정도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하는 것도 같고, 어쨌든 저는 계속 활동가로서 살아갈 것 같은데, 지금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청소년 운동 같아요. 아직은 더 해야 하는 것 같고. 우리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공익활동을 사이드 프로젝트가 아니라 자기 삶의 메인 프로젝트로서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청>은 유스펀치 지원을 받아 2018년부터 2019년까지 경남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을 중심으로 한 청소년 운동을 기록하고 있다. 경남학생인권조례 운동의 역사가 10년이 넘었음에도 그동안 청소년들이 조례 제정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알기 어렵다. 청소년 운동은 기록되는 일이 드물고, 기록되더라도 다른 집단의 운동의 부록처럼 언급되기 때문이다. <조청>의 활동기록집 제작을 통해 청소년 운동의 역사를 남기고, 다른 지역에서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에 간접적인 도움을 줄 것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조례 제정을 확신하고 승리의 기록을 남길 생각이었다는 이글과 귀홍. 일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조례안을 살려내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며 활동기록집 제작까지 병행한 그들은 조금 지친 기색이었다. 그러나 좌절하기보다 “우리는 진 게 아니라 아직 못 이긴거야”라고 말하며 리부트를 준비하는 이들의 다음 스텝이 기대된다.
글 | 아름다운재단 허그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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