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 – 주거위기청년 이야기
‘아, 이제 살았다!’
‘청년, 공간’에 첫발을 들이는 순간, 수연 씨(가명·30세)의 마음속에 맺힌 메아리였다. ‘청년, 공간’은 주거가 위태로운 청년들을 상시 지원하는 거점 공간으로 수연 씨는 우여곡절의 틈을 비집고, 이 최소한의 안전망 속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간 수연 씨가 맞닥뜨렸던 혹한의 나날은 참 시리고 아렸다. 그저 한 움큼 정도, 세상의 관심과 격려가 간절했지만 수연 씨는 외딴섬처럼 고립된 것만 같아 더는 버티기가 힘겨웠다.
사실 지금의 청년주거정책은 대학생과 취준생에 초점이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불가피한 탈가정이나 불안정한 일자리로 사회적 지지 기반이 열악한 청년들은 충분히 아우르지 못하는 실정이다. 공공정책의 사각지대에서 주거위기청년들은 방황하며 거리로 내몰리곤 한다.

청년들의 사정을 여실히 들여다본 ‘아름다운재단’은 청년들의 노숙 진입을 방지하고, 자립 발판을 마련하고자 ‘희망가치’와 함께 <노숙위기청년 주거지원사업>을 빚어가고 있다. 수많은 공감과 특별한 응원이 깃든 이 사업을 통해 청년들은 저마다 새로운 일상을 그려 나가는 중이다. 그 가운데 수연 씨는 우울감과 무력감에서 벗어나며, 서서히 얼굴에 생기가 감돌고 있다. 조심스럽지만 아주 또렷이, 해사한 미소도 피어나기 시작했다.
“저도 보통의 사람들처럼 생활할 수 있다는 현실이 너무 감사했어요. 그래서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다시 살아갈 수 있구나. 오늘은 어제보다 더 행복한 하루를 보내야겠다…….”
겨울과 봄 사이를 떠도는 청년의 계절
수연 씨가 집을 떠난 날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초겨울이었다. 그때도 온몸은 멍투성이였다. 청소년 시절을 상처로 뒤덮은 부모님의 가혹한 폭력은 수연 씨에게 생존의 문제였다. 그래도 안간힘으로 견뎠던 이유는 동생을 곁에서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자신과 다르게 동생은 부모님께 사랑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왜일까, 못내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차올랐다.
“살기 위해 도망쳤던 것 같아요. 곧 스무 살이기도 했으니까요.”
서글픈 심정으로 간신히 집을 벗어났다. 어디도 의지할 곳 없었기에 수연 씨는 더욱 굳세게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오롯이 하루하루를 채워 나갔다. 고시원에 터 잡고서, 홀로서기 위해 밤늦도록 성실히 일에 매달렸다. 그런데 세상은 이상했다. 느닷없이 고시원에서 퇴거를 통보해 버렸다. 밤늦게나 돌아온다고, 고시원의 질서를 해쳤다는 이유가 다였다. 그래서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한 채 쫓겨나다시피 밖으로 내몰렸다. 너무 억울했지만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당장 거주할 곳도 없고, 여윳돈도 없어서 근처 고시원을 찾아가서 제 사정을 얘기했어요. 지금은 월세가 부족하지만 열심히 일해서 어떻게든 빠르게 납부하겠다고, 도와달라고 부탁드렸어요.”

다행히 한 고시원에서 수연 씨의 절박한 진심을 헤아려 주었다. 그 선의가 눈물겹게 다정해서 수연 씨는 마음을 추스르며 새롭게 다짐했다. 반드시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주체적인 인생을 살겠다고. 그러나 각오와 다르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억울한 직장 내 괴롭힘에도 묵묵히 일어섰지만, 뜻밖의 권고사직에도 의연히 대처했지만, 그 후로는 도무지 다시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번번이 입사를 거절당했고, 자신의 존재마저 부정당하는 듯한 현실 속에서 심신의 건강도 나빠졌다. 다달이 고시원비는 밀려갔고, 이내 생활고도 덮쳐왔다. 한 달, 두 달, 세 달…… 무서웠다. 아무리 둘러봐도 아무도 없었다.
“살길이 막막해서 정신없이 인터넷을 검색했어요. 우연히 SNS에서 ‘수상한 복덕방’ 캠페인을 발견했는데, 주거위기청년도 도와준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절박해서 무작정 전화했어요. 제발 지원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아니, 지원 못 받아도 제 사정이 나아질 수 있는 방향이라도 알려주면 좋겠다. 오직 그 마음뿐이었어요.”
숨표 같은 쉼표가 맺힌 청년의 공간
수연 씨는 사려 깊은 안내에 따라 상담을 약속한 후 ‘청년, 공간’으로 찾아갔다. 하늘빛이 환하게 스미는 그 공간에 들어서자 툭, 숨이 트이는 듯했다. 수연 씨는 켜켜이 쌓인 그간의 고단한 사연을 풀어냈다. 그리고 존중과 배려 속에 긴급히 고시원비를 해결할 수 있었고, 식료품과 생필품도 살뜰히 마련할 수 있었다. 동시에 ‘청년, 공간’을 중심으로 심리상담을 비롯해 자신의 사정을 헤아린 맞춤형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제가 새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해요.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셔서 스스로 일어서는 방법도 찾아가고 있어요. 지금도 느끼고 있지만, 이 사업은 저 같은 청년들이 무너지지 않게 손을 잡아주는 것 같아요. 너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그 길을 함께 열어가자고 다독여주는 것 같아요.”

‘청년, 공간’을 오고 가며 수연 씨의 일상은 점점 밝아졌다. 아침이면 수연 씨는 공원을 산책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더러는 책을 읽고, 정겨운 풍경은 사진으로 담기도 한다. 그 생기로운 찰나의 여유 속에서 거주하는 고시원도 한층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그 공간은 여전히 자그마했지만 더욱 포근했다. 포슬포슬한 침대처럼. 그래서 수연 씨는 그곳에서 말간 내일을 그려낼 수 있었다.
“제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을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요. 바리스타였어요. 바리스타로 근무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긍정적인 경험을 드렸을 때 진짜 뿌듯했거든요. 마침 지인분이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한다고 바리스타 면접을 제안해 주셔서 준비하고 있어요. 그래서 좀 설레요.”
수연 씨의 소망은 천천히, 그러나 단단히 번져갔다. 무엇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수연 씨는 공공기관에 주거상향 지원을 신청해 두었다. 혹여 결과가 여의치 않더라도 차근차근 주거 기반을 다져 나가려 한다. 우선은 장판과 벽지가 말끔하고, 화장실이 딸린 집으로 이사하고 싶은 바람이다. 그렇게 삶터를 조금씩 정돈하면서 온전한 자립을 실현해 내고자 한다. 그 꿋꿋한 여정 속에서 수연 씨는 나누고 베풀며 살아가는 미래도 떠올리고 있다. 그것도 아주 당연하게. 그 미래의 기억은 참 따뜻해서 꽁꽁 얼어붙은 지난날을 녹이며, 수연 씨의 현실에도 잔잔히 스며들고 있다.
“저 같은 청년들이나 사정이 어려운 분들을 마주치게 되면, 소소하더라도 그분들을 도와줄 수 있을 만큼은 삶이 나아지고 싶어요. 그때쯤에는 유기견 돌보는 봉사도 하고 싶고요. 정성껏 음식을 지어서 주위에 전하고도 싶어요. 저를 가장 사랑해 주셨던 돌아가신 외할머니처럼요. 그래서 더 이상 불행을 감추려 애쓰지 않고, 누가 봐도 행복이 배어나는 삶을 살아가고 싶어요.”
3월에 태어난 수연 씨는 유달리 봄이 좋았다. 초록빛이 솟아나는 세상이 경이로워 마음이 벅차기도 했다. 다만, 수연 씨가 나고 자란 바닷가의 그 마을은 유난히 겨울이 길었다. 10월부터 3월까지 매섭게 눈발이 흩날리곤 했다. 그해 겨울도 그런 줄 알고 봄을 기다렸다. 하지만 사나운 눈보라는 끊이지 않았고, 3월이 지나도 봄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혹한의 나날은 참 시리고 아렸다. 살이 에이고 뼈가 저렸으며 시퍼렇게 멍도 들었다. 그래서 수연 씨는 봄을 찾아 떠나야만 했다.
지금도 수많은 청년이 수연 씨처럼 저마다의 사연으로 겨울의 한복판을 헤매고 있다. 고시원을 비롯해 PC방, 찜질방, 만화방, 그리고 거리를 전전하고 있다. 그들이 소망하는 공간은 거창하지 않다. 그저 마음 움츠리지 않고 먹고 자기 위한 자그마한 자리가 필요할 뿐이다. 그 공간이 마련되고, 공감과 응원이 깃든 자립 지원이 함께한다면 그들은 다시 봄을 불러올 수 있다. <노숙위기청년 주거지원사업>으로, 「청년,공간」으로, 그리고 유관 공공정책으로 다시 봄이 돌아오면 수많은 청년은 새싹처럼 아스팔트도 뚫고 세상에 움틀 수가 있다. 봄의 추억을 간직한 채 그예 꽃과 나무로 피어올라 세상을 따뜻하게 물들일 수도 있다. 수많은 청년이 그렇고, 희망을 머금은 수연 씨가 그렇다.
※ 아름다운재단 노숙위기청년 주거지원사업은 (사)희망가치와의 협력사업으로 진행됩니다.
글 노현덕 작가
사진 김권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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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박 365일 ③ 그저 앉아 있거나, 엎드려 있거나
🔗무박 365일 ④ 이런 집이라도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