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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사의 기쁨과 슬픔] 프로젝트란?

[감각의 기억 서문]

문득문득 떠오르는 느낌이 있습니다. 냄새, 온도, 감촉 같은 몸이 기억하는 것들 말이지요. 한 사람의 몸이 기억하는 것을 아는 것은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그리고 그도 나와 같은 감각을 가진, 같은 사람임을 확인할 방법이지요. 저는 그간 업무로만 알았던 사람(동료)을 움직이는 ‘감각의 원천’을 서로 알면 좋겠다는 생각에 생생히 기억하는 감각에 관해 물어 보았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다가 시간이 5분 정도 남았을 때, 사전예고 없이 자신이 기억하는 ‘감각’을 기습적으로 물었습니다. 자신의 몸이 기억하는 날것을 끌어내기 위함이었습니다.  – 정원연 작가

 

우선, 간사님들에게 저의 ‘감각의 기억’을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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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정원연 작가)

어릴 적, 여러 가구가 한 마당을 쓰는 집에 살았어요.
제가 한 다섯 살쯤, 마당 모퉁이에는 중학교 다니는 오빠가 살고 있었어요.
머리를 감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중학생은 까까머리니까 머리를 문지를 때 물이 제 얼굴에 튀었어요.
찬 물방울 느낌이 재미있고 좋아서 피하지 않고 계속 구경하던 생각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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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정원연 작가)

시골에 있는 외가는 한옥이었어요.
겨울에 웃풍이 세니까 고양이들도 이불 속에 들어와 잤어요.
내 발목에 몸을 대고 자던 고양이들의 부드러운 털 감촉이 생각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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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정원연 작가)

여름에 시골에서 외할머니와 풀밭을 갔어요.
아주 진한 풀냄새가 났어요. 햇볕이 뜨거웠어요.
그 풀 냄새와 뜨거움이 생각이 자주 나서 그렸더니 이제 생각이 안 나요.

인터뷰에 참여하신 간사님들은 제 감각의 기억 드로잉을 보시며 저마다 감각의 기억을 떠올리셨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난 장면이 주요 감각의 기억일 것입니다. 그룹 인터뷰에 참여한 간사님들의 주요 감각의 기억을 정리해보았습니다.

 

박효원

여름 날 마룻바닥의 시원함 (그림-박효원 간사)

어린 시절 초등학교 1, 2학년 때까지는 여름에 더우면 팬티만 입고 그냥 마룻바닥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 집이 단독주택이었는데 마루가 되게 넓었어요. 엄마가 가게를 하셔서 집에 들어오면 사람이 없었는데 엄마가 썰어 놓은 수박과 책을 옆에 두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으면 바닥이 참 시원했어요. 그 집이 햇빛이 잘 드는 집은 아니었거든요. 적당히 어둑어둑한 데서 시원한 바닥 질감을 느끼면서 그냥 널브러져 있었던 기억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어요.  – 박효원 간사

홍리

옥상에서 떨어졌을 때의 호흡이 정지되는 느낌 (그림-홍리재희 간사)

초등학교 저학년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 시간만 나면 낮에 사람이 집에 있거나 없거나 아랑곳없이 장독대를 밟고 벽에 있는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에 올라갔어요. 지붕 위를 막 왔다 갔다 하며 혼자 노래도 부르고 음을 만들어서 아아~ 하며 관객이 없는 연극도 했지요. 혼자 거기를 무대 삼아서요. 거의 나의 놀이터였어요. 급기야 옥상에서 놀다가 떨어진 적도 있었어요. 높은 데서 떨어지면 그 순간엔 숨을 못 쉬어요. 기억이 생생해요. 떨어지면 아무 숨이 안 쉬어지고 꼼작도 못 해요. 그러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숨이 쉬어지면서 다시 집으로 들어가서 “엄마, 나 떨어졌어.” 라고 했어요. 높은 곳에 자꾸 올라가던 기억이 많아요. 집에서도 높은 곳, 장롱 위에 올라갔다 떨어지고. 왜인지 모르게 높은 곳을 보면 자꾸 기어 올라가는 습관이 있었어요. – 홍리재희 간사

김현아

엄마가 입에 넣어준 귤, 임신 막달의 이카시아 향 (그림-김현아 국장)

‘감각의 기억’에 대해서는 일부러 떠올리지 않아도 확연하게 생각나는 두 개가 있어요. 대학 영작문 수업 시간에서 미리 생각해 해놓았어요. 하나는 ‘귤’이에요.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온돌 난방을 하면 위 공기는 차가운데 바닥의 이불 안은 따끈따끈했어요. 그때 엄마가 시장에서 장을 봐서, 자고 있는 저를 깨우는 방법이 귤을 까서 입에 넣어주는 거였어요. 기억이 아직도 나요. 겨울이라서 엄마 옷에는 찬 바람이 묻어 있고, 귤을 딱 까는 순간의 향긋한 냄새랑 바닥은 따뜻한데 입안에는 차가운 귤이 들어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이 이야기를 영작문으로 썼더니 교수님이 “참 스위트한 기억을 갖고 있구나.”라고 얘기하셨어요.

두 번째는 아카시아 꽃이에요. 보통 5월에 아카시아 꽃이 피잖아요. 제가 아이를 6월 25일에 낳았거든요. 5월이면 막달이었을 때인데 뒷산에 올라가면 아카시아 꽃 냄새가 되게 달콤하고 호르몬 때문에 제 감정이 소용돌이치던 상황이었죠. 5월에 아카시아 냄새가 딱 나면 기억이 삭 나는데 그걸 정리하면 아까 귤은 스위트(sweet, 달콤한)였잖아요. 이건 비터 스위트(bitter sweet, 씁쓸 달콤한)일 거에요. 그래서 그 기억이 나요. 임신 시기의 기억을 되돌리면 항상 눈물이 나요. (훌쩍) 처음 보시는 분들은 당황하셨겠지만 아름다운재단 최종면접 때도 “그래서 아기를 놔두고 나올 수 있겠어요?” 하는 순간 그때 딱 이 기억이 나서 막 울었어요. 그 이후부터 저희 애와 관련된 이야기 혹은 임신 기간 얘기를 하면 계속 눈물이 나요. 이 감정을 표현을 못해서 별표로 했는데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그 감정이 되살아나요.  – 김현아 국장

김현정

매 순간이 충격 (그림-김현정 간사)

저는 딱히 한순간의 기억이라기보다는 인생에서 항상 충격을 받고 깨달음을 얻고 가는 느낌이에요. 충격과 깨달음. 나는 인생을 항해하고 있구나. 순간순간이 기억이 나네요. – 김현정 간사

신성규

자연이 좋아 (그림-신성규 팀장)

2년 전에 가족들과 노고산에 올라가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 자고 왔거든요. 옆에서 아내가 쳐다보더니 재미있다는 식으로 “남편이 이렇게 야생을 좋아할지 몰랐네.” 하더라고요. 그때 찍은 사진을 보니까 얼굴이 제가 본 중에 제일 환한 거예요. 편안하고. 하지만 귀농은 주말농장에서 삽 세 번 떠보고 ‘아, 이건 아니다.’ 했어요.  – 신성규 팀장

박초롱

아빠가 머리 감겨 주실 때 비눗물의 따가움 (그림-박초롱 간사)

어렸을 때 마당이 있는 단독 주택 살았어요. 아빠가 정말 딸을 아끼시는 분이셨어요. 그렇지만 머리 따위는 감겨 주신 적이 없었죠. 그렇게 예뻐하고 아껴주고 잘 놀아주는 외동딸이었지만 남자는 투박해서 어떻게 할지 잘 모르잖아요. 엄마가 그때 몸이 좀 안 좋으셨는데 아빠가 “당신은 누워 있어. 내가 얘 머리를 감겨줄게” 했어요. 엄마는 저를 무릎 위에 눕혀서 얼굴에 물이 안 닿게 하시는데, 아빠는 본인이 머리 감으시듯 하는 거예요. 일단 엎어서 빨래 빨듯이 하는데 눈, 코, 입에 거품이 미친 듯이 들어왔어요. 난 너무 짜증이 났죠. 엄마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는데 엉엉 울면서 “아빠, 싫어!” 했어요.

그때 아빠가 어떻게 했냐면 보통 화가 날 법한데 나한테 너무 미안해하는 거예요. 진짜 너무 당황해서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라 비눗물 묻은 손으로 내 얼굴을 씻겨줬어요. 그럼 난 또 울었죠. 그럼 아빤 비눗물로 나를 또 씻겨 주고. 아빠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했었는데 나는 정말 발악을 하면서 울었어요. 너무 아프니까. 아빠는 지금도 이 얘기를 하면 “내가 언제?”라고 하시겠지만 제겐 정말 강렬해요. 아빠에게 너무 미안한 거 같아요. 아빠는 최선을 다했는데. 이때 아빠가 서른일곱 살이었어요. 지금 나와 비슷한 나이에 얼마나 당황했을까? 내가 만약 그 상황이었으면 저 구석에 박혀 울었겠다 싶어요. 딸이 나한테 싫다 그래서. 상처받아서. – 박초롱 간사

두은정

사춘기 시절, 여름에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 (그림-두은정 팀장)

제가 시골 사람인데 사춘기가 되게 늦게 왔어요. 중학교 2학년이었나? 엄마, 아빠가 좀 바쁘셔서 주로 할머니랑 지냈거든요. 엄마, 아빤 밤이나 저녁에만 보고. 나의 질풍노도의 이 갈팡질팡, 뭔지 모르겠는 터질 것 같은 그런 느낌! 근데 이걸 해결을 못 해서 학교가 끝나면 한 세 시, 네 시 되잖아요. 그러면 막 두 시간 씩 자전거를 타고 다녔었어요. 피가 끓어서. 우리 집 주변이 다 논이었어요. 동네 아줌마들이 쟤 왜 저러나? 했을 거예요. 자전거를 타고 끝까지 가면, 평야가 있었어요. 경지 정리를 잘해서 지평선이 다 논인데, 끝까지 간 적도 있어요. 끝까지 가면 강이 있어요. 갔다가 저녁에 왔어요. 여름에 뜨겁고 막 강렬한 느낌들 있잖아요. 저 그림의 논이 평야예요. 가로의 선은 지평선이고요. 요즘도 가끔은 자전거를 타고 나가고 싶어요. – 두은정 팀장

이수연

삼남매가 도너츠, 케잌 만들었을 때 (그림-이수연 간사)

부엌에서 도넛을 만들고 있는 그림이에요. 엄마, 언니, 저, 남동생! 아빠는 교대 근무하며 일하시느라 늘 바쁘셨어요. 그런 탓에 엄마가 세 남매를 굉장히 열심히 키우셨어요. 그 힘든 와중에도 저희 어렸을 때 같이 재미있게 놀자고 도넛도 만들고 케이크도 만들고 이런 걸 많이 하셨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외식보다 저희는 같이 이렇게 만들어 먹는 걸 되게 재밌어했는데, 문제는 저희 삼 남매 모두가 창작활동을 되게 좋아했다는 거예요.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엄마에게는 엄청 일이잖아요. 밀가루 날리고 그런 걸 싫어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자유롭게 뭔가 같이 만들고 하는 걸 자주 했다는 게 고맙고 엄청 좋아요.

같이 음식을 만들 때의 즐거움과 밀가루로 무언가를 만들 때의 그 재미! 막 신나 미칠 것 같은 아이들의 기분 있잖아요. 그런 게 되게 제 무의식 속에 늘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도넛을 뚫을 때 컵으로 중간에 딱 뚫잖아요? 그걸 서로 중간을 뚫겠다고 다투기도 했고요. 동생이 꼬마 상에 겨우 손만 얹을 정도로 작은 아기였는데도 같이 하려고 했어요. 이런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케이크도 만들고, 크림도 바르고. 난리를 쳤을 텐데 그때 엄마를 생각해 보면 나도 아기가 생기면 이런 걸 할 수 있을까 싶어요. 이게 다른 어떤 교육보다도 ‘사랑을 나눴다’라는 충만함이 있어요. 나도 나중에 아기들이 생기면 같이 요리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어요. 마음속에. – 이수연 간사

황선민

여러 가지 기억의 조각들 (그림-황선민 간사)

첫 번째 그림은 화장실 타일이에요. 저희 어머니가 저를 어릴 때부터 혼자 키우셨거든요. 외할아버지가 오셔서 “선민아, 너 엄마가 힘드니까 네가 청소를 도와줘야 돼.” 하시면서 청소하는 법을 알려주셨어요. 화장실 타일은 타일과 타일 사이에 이 하얀 색깔이 보여야 한다면서 말씀해주셨어요. 근데 그 모습이 제가 청소할 때마다 생각이 나요. 저는 화장실 청소 되게 자주 하는 편인데, 사실 자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서예요. 지금은 돌아가셨거든요. 감각의 기억 하니까 이게 제일 먼저 떠올랐어요.

두 번째는 레고 블록과 컴퓨터 모니터에요. 제가 중고등학교 사춘기 때 롤 모델이 노무현 대통령이었어요. 전 마음이 힘들거나 할 때 그걸 엄마한테 말 할 수 없었어요. 엄마도 힘들기 때문에요. 내가 힘든 거, 나의 괴로움을 혼자 삭여야 할 때 혼자 컴퓨터를 켜 놓고 노무현 대통령이 토론하는 걸 들으면서 레고 블록으로 아파트를 지었어요. 부동산 114 뱅크 가면 아파트 평면도 그림이 나오거든요. 그걸 똑같이 짓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마음이 금방 안정되었어요. 이걸 완성하는데 한 세 시간 걸려요, 내 마음을 안정시킬 때 그렇게 했던 기억이 나요. 이걸 제가 고1 때까지 했나? 그때 그랬었고 지금은 안 해요.

세 번째 그림은 2층 남자 화장실이에요. 제가 아름다운 재단에 2012년 11월 4일에 왔었어요. 처음 재단에 와서 화장실 거울을 보는데 너무 신기한 거예요. ‘내가 아름다운 재단에 와 있다니!’ 그래서 그때 제 모습을 찍은 사진도 있어요.

네 번째는 두 줄짜리 사무실 형광등이에요. 제가 입대했을 때 첫날밤에 자는데 내무반 천정에 달린 형광등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아요. 그 등을 보면서 ‘내가 이 등을 보고 앞으로 2년 동안 살겠구나.’ 생각했었거든요. 그때 그 불안감 같은 것들이 생생해서 그려봤어요. – 황선민 간사

장혜윤

살아있다는 느낌 (그림-장혜윤 간사)

이전 직장 일을 관두고 유럽여행을 갔어요. 괴테가 노년에 살았던 독일의 바이마르라는 마을의 숲을 걸을 때였어요. 그 파란 하늘과 나무들, 바람이 막 불어오는데 진짜 살아있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어요! 그 순간은 ‘아, 이거 정말 기억하고 싶다! 간직하고 싶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가 오래전에 아주 선명하게 꾸었던 꿈이 있었는데 그 꿈과도 비슷한 풍경이었어요. 꿈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현실 속 파란 하늘과 크고 높은 나무를 보면서 ‘살아있음’을 느꼈어요. 숲길을 걷는 그 순간에는 ‘살아있어서 감사하다. 다행이다. 살아있으니 이 순간도 만나는 거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왜 살아야 하는가 이런 고민을 하던 시기여서 더 강렬한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 장혜윤 간사

이창석

장례식에서 들었던 이상한 느낌 (그림-이창석 간사)

이 장면은 제가 한 일곱 살 때 정도고요. 이 빨간 건 ‘현대 재믹스’라는 게임기예요. 그때 제가 가지고 있었던 게임기로 오락하는 모습인데 이날은 사실 저희 할머니 장례식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집에서 장례를 지냈거든요. 사람이 정말 많았고, 며칠 동안 거의 수백 명이 왔으니까 어디 있을 데도 없었어요. 저는 장례식 날인데도 오락을 하고 싶다고 막 난리를 쳐서 오락을 했어요.

제가 사실 좋은 기억을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그림으로 그리고 나면 잊어버린다고 들어서 나쁜 기억을 꺼내봤어요. 저는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좀 죄책감이 있어요. 제가 집안의 장손이어서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굉장히 챙겨 주셨어요. 그렇지만 제가 클 때만 해도 벌써 병세가 있으셨고 저는 되게 피해 다니고 싫어하고 그랬어요. 치매도 있고 그러니까요. 그 기억이 죄책감처럼 남아있어요. 그때도 오락하면서 뭔가 되게 외면하고 싶어 했어요.

저는 어쩌면 늙음이란 것을 싫어했던 것 같아요. 마치 부자연스러운 것처럼. 그것이 두려움에 기인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싫어하기 때문에 두려운 것인지 두려워서 싫어하는 것인지 두려움 자체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할머니 장례식에 너무 많이 오신 조문객들 사이에서 숨이 막혔어요. 어린 나이지만 지쳤고 제 일상을 살고 싶었어요. 생각해보면 저는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차가운 반응을 보였어요. 그걸 보여주는 것이 오락기였고 그랬던 것이 죄송해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그리고 오랫동안 병을 앓으셨던 할아버지께도 차가웠어요. 할아버지는 집에서 병을 앓으셨고 집에서 돌아가셨지요. 5~6년 넘는 긴 시간이었어요.

취직하고서 꽃동네 갔을 때 저는 그때의 그 냄새를 다시 맡았어요. 늙고 병들어 나는 냄새를. 할아버지께 가졌던 나의 차가움에 대한 죄책감은 냄새로 다시 회상되었지요. 그래서 도망쳐 건물 밖에 숨어 있을 때 제가 가진 감정은 늙음에 대한 싫음은 아니었어요.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었지요. 나는 어째서 다른 사람처럼(같이 간 직장 동료들) 그 일을 돕지 못하는가, 어째서 이 공간에서 이 일을 하는 것이 이렇게나 못 견디게 힘든 것인가에 대한 부끄러움이었고 그것은 할아버지에 대한 저의 죄책감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외의 일, 제가 좀 더 할 수 있는 일을, 잘하고 싶어요. – 이창석 간사

 

뱃맨

홍리재희 간사님은 옥상에서 여러 차례 떨어져서 숨이 안 쉬어지고 몸이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때마다 다시 살아난 기억을 말씀하셨습니다.
간사의 책상을 촬영할 때 그분의 책상에 고개를 숙인 배트맨 철제 조형물과 날아다니는 열기구 장식이 있더군요.
낙상의 경험, 열기구 그리고 배트맨. 동료에게는 그분을 더욱 이해할 수 있는 주요 키워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중한 기억들을 가감 없이 재미나게 이야기해주신 아름다운재단 간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글 l 정원연 (현대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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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사의 책상] 촬영 조수의 후기

5. 감각의 기억

<번외편 1> – 연재의 사진
<번외편 2> – 은정의 사진
<번외편 3> – 성규의 사진

 *이 프로젝트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파견지원사업’에 참여한 예술가들과 함께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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